자유시 참변은 무엇을 남겼는가: 6. 나가며

6. 나가며 한국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소비에트 러시아의 지원과 응원을 얻으려 했던 상해파와 러시아 내의 공산주의 한 부분이 되려 했던 러시아화된 한인들인 이르쿠츠크파 간에는 상당한 간격이 존재했다. 동아시아 민족해방운동이 코민테른 …

자유시 참변은 무엇을 남겼는가: 5. 대한의용군

5. 대한의용군 ​ 자유시 참변의 승자는 이르쿠츠크파였다. 그러나 상해파가 전멸한 것은 아니었다. 참변 도중 도망친 사람들도 있었고, 다른 지역으로 파견을 나가 있던 사람도 있었다. 특히 블라고베셴스크에서 군수품 지원 업무를 맡고 …

자유시 참변은 무엇을 남겼는가: 4. 고려혁명군

4. 고려혁명군 자유시 참변은 독립군 통합의 실패를 야기한 사건으로 여겨진다. 현대 학자들의 평가도 그러하다. 니항부대를 비롯한 사할린부대 대원들 상당수가 고려혁명군에 합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르쿠츠크파는 자신들이 독립군 통합을 완수하였다고 주장하고 …

자유시 참변은 무엇을 남겼는가: 3. 처벌

3. 처벌 ​ 사실, 자유시 참변으로 인한 대규모의 손실은 참변 자체보다는 사후 처리에서 발생했다. 누구의 주장을 인용하든 참변으로 인한 사상자보다 포로가 더 많았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포로들은 사법 절차를 거쳐야 …

자유시 참변은 무엇을 남겼는가: 2. 사상자

2. 사상자 ​ 이 사안에서 가장 쟁점이 될 만한 것은 어쩌면 사상자의 추정이다. ​ 물론 고려혁명군과 29연대의 사상자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쟁이 없다. 고려혁명군에서 1명이 사망했고, 29연대에서는 1명이 사망했거나 혹은 아무도 …

자유시 참변은 무엇을 남겼는가: 1. 들어가며

1921년 6월 28일의 자유시 참변에는 ‘아무르 사건’, ‘흑하사변’, ‘흑룡주 사건’, ‘자유시 사건’ 등 다양한 이칭이 존재한다. 하지만 참극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기에 자유시 참변이라고 통용되며, 교과서에도 그렇게 실려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