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열도의 주민 (1) 일본, 일본인

01장. 일본열도의 주민

1. 일본·일본인

2. 토착 주민

3. 류큐 열도의 주민

4. 재일 조선인·한국인

5. 일본상

1. 일본·일본인

일본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이 열도 사회를 일본이라 부르고, 그 주민들을 일본인이라 부르게 된 역사적 과정에 대해 확인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본 사회나 일본인, 일본 문화도 모두 역사적 과정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며, 그 과정은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사회나 문화라는 틀로 일본을 설명하게 되면 일본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이미지를 만들어내게 되고, 그것을 먼 과거에까지 투영하거나 열도의 구석구석까지 적용함으로써 대상을 실체화하기 쉽다. 이는 아무리 조심을 하더라도 쉽게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일본이라는 관념이 도대체 언제 어떻게 성립하였는가 하는 문제는, 일본의 역사나 사회, 문화를 다루는 데 가장 기본적인 과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일본이라는 말이 누가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한 말이고, 그때 기준이 된 것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문헌상으로는 야마토(大和) 조정이 중국의 수(隨)나라에 보낸 국서에서 자국을 “해 뜨는 나라”라고 칭한 것이 알려져 있다. 이것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세계 안에서 동쪽 끝에 위치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태양이 뜨는 것처럼 양기 왕성한 활력을 가진 나라라는 의미를 포함하는 표현이었다. 즉, 중화 문명권의 국제 질서 안에서도 가장 주변부에 위치하여 중화의 권위를 강하게 의식하면서도 그에 대항하는 주체성을 주장하려는 것으로 간주되어, 당시 중화 세계의 중심이었던 수나라의 불쾌감을 유발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열도 사회의 사람들이 중화문명과의 관계 속에서 독자적인 정체성을 자각하고 주체성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원의 새로운 통일왕조로 등장한 수나라와 육지로 이어져 있었던 한반도의 세 나라는 정기적으로 사절단을 보내 책봉을 구하고 스스로 종속적인 지위를 받아들였는데, 이와 비교해보면 열도의 주민들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주변에 위치했던 탓에 동아시아 국제 질서에 대한 현실감각으로부터 상당히 소외된 상태였다는 사실이 국서에 나타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또한 국서에 직접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야마토 조정이 수나라에게 턱없이 대등한 관계를 주장했던 배경에는 열도 내부의 사회적·정치적 통합을 추진하기 위해 왕조의 정통성 확립을 우선시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던 것 같다.

-이토 아비토(2009), 『일본 사회 일본 문화: 동경대 특별 강좌』. 소와당-

서안 대당서시 전시관 앞에 일본이 복원해 설치한 遣隋船 모형. 실제 일본이 견수사와 견당사 파견에 활용했던 배들은 ‘백제선’ 혹은 ‘신라선’으로 불리던 것으로, 이 모형은 ‘신라선’ 혹은 ‘백제선’의 복원모형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 정보에 표시된 이토 아비토 교수의 간단한 이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토 아비토(伊藤亞人)

도쿄대학 대학원 사회학연구과 졸업. 도쿄대학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 문화인류학연구실 교수, 류큐대학 대학원 동아시아연구과 교수 역임, 현 도쿄대학 명예교수, 와세다대학 아시아연구기구 교수. 주요 논문으로는 「계에서 보이는 친한 사이의 분석」(1977),「옹기와 주부」(1985),「요사코이 마츠리: 중국·한국 축제와의 비교」(1987),「역사인식의 한일비교」(1989),「한국의 공간인식에 있어서 중심성과 주변성」(1997),「한국·조선연구의 상황과 전망」(2000),「산과 바다에서 볼 수 있는 한국의 세계관」(2003) 등이 있으며, 저서로『한국』(1996)『더 알고 싶은 한국』[제2판](1997), 『한국진도의 민속기행』(1999), 『한일사회조직의 비교』(공저, 2002) 등이 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