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개소문 최후의 전쟁, 최대의 승첩: 9. 나가며

연개소문이 정확히 언제 사망했는지는 불명확하다. 당나라의 기록들은 666년 연남생의 청병을 기록하며 연개소문의 사망 기사를 덧붙였을 뿐 자세한 시점은 언급하지 않았다.[9-1] 반면 『일본서기』는 그 유명한 유언 기록과 함께 연개소문이 664년 10월에 …

연개소문 최후의 전쟁, 최대의 승첩: 7. 선택과 집중

2차 고당전쟁에서 당나라의 본래 계획은 신라군을 동원하는 것이었다.[7-1] 그러나 당시 한반도 남부의 상황은 당나라의 예상과는 상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660년 9월 소정방이 철수하자 백제부흥군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백제 지역에 잔류한 1만 …

연개소문 최후의 전쟁, 최대의 승첩: 4. 침공군의 진격

661년, 당나라는 수륙 35군(軍)을 동원하여 고구려를 대대적으로 침공하였다.[4-1] 처음에는 당고종도 친위대를 이끌고 친정하려 하였지만, 측천무후 등이 만류하자 결국 포기하였다.[4-2] 그래서 친정군을 제외한 35군만 여러 개의 행군으로 편성되어 고구려로 진격하게 되었다. …

연개소문 최후의 전쟁, 최대의 승첩: 1. 들어가며

661~662년의 2차 고당전쟁은 고구려와 당나라의 두 번째 전면전이다. 그러나 넓게 보면 거란과 철륵, 백제 부흥군과 신라, 경우에 따라서는 왜국까지 관여한 국제전이기도 하다. 또 이 전쟁의 시작을 알린 당군의 상륙작전은 시대를 …

자유시 참변은 무엇을 남겼는가: 6. 나가며

6. 나가며 한국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소비에트 러시아의 지원과 응원을 얻으려 했던 상해파와 러시아 내의 공산주의 한 부분이 되려 했던 러시아화된 한인들인 이르쿠츠크파 간에는 상당한 간격이 존재했다. 동아시아 민족해방운동이 코민테른 …

자유시 참변은 무엇을 남겼는가: 5. 대한의용군

5. 대한의용군 ​ 자유시 참변의 승자는 이르쿠츠크파였다. 그러나 상해파가 전멸한 것은 아니었다. 참변 도중 도망친 사람들도 있었고, 다른 지역으로 파견을 나가 있던 사람도 있었다. 특히 블라고베셴스크에서 군수품 지원 업무를 맡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