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략한 서양 의학사 (1)

1. 질병의 정의

질병. 인류가 존재한 이래 인류는 질병에 시달리고, 질병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은 끊임없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질병은 무엇일까요? 질병을 영어로 적으면 ‘disease’인데, 이걸 풀어보면 ‘dis (not) + ease (comfort)’, 즉 불편한 상태를 뜻하게 됩니다. 현재 질병은 ‘그것의 영향을 받은 사람에게 심신의 불편함 혹은 기능장애를 주는 비정상적인 상태’로 정의됩니다.

질병은 감염성 질환과 비감염성 질환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하는데,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감염성 질환은 바이러스 ·세균 ·곰팡이 ·기생충과 같이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가 동물이나 인간에게 전파 ·침입하여 질환을 일으킨다. 반면, 비감염성 질환은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이 병원체 없이 일어날 수 있고 발현기간이 길다.

라고 합니다. 사실 저는 저 생각에 그리 동의하는 편은 아닙니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좀 더 논하겠습니다.]

2. 역사적으로 유명한 역병들

고대에는 전염병이 많았습니다. 요즘처럼 예방 접종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방역 체계도 좋은 편이 아니었으니까요.

고대 그리스/로마 시기 악명을 떨친 질병은 참으로 많습니다.

우선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를 무력화시켜버린 역병이 있습니다. 이 역병에 대해 그리스 역사가 투기디데스 (Thucydides, BC 460 – BC 395) 는 다음과 같은 무시무시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건강하던 사람들이 모두 갑자기 열이 나고, 눈이 충혈되고 염증이 생겼다. 목과 혀에는 피가 나고 호흡할 때 악취를 풍겼다. 그 뒤로 재채기와 기침이 이어졌고, 설사, 구토, 격렬한 경련이 생겼다. 또한 피부가 농포와 궤양으로 덮혔고, 참을 수 없는 갈증이 생겼다. 대부분 7-8일 내에 죽었으며, 살아남았다 해도 말단부 (손가락, 발가락, 생식기[…])가 궤사하고, 시력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까지도 이 질병이 무엇인지는 논란이 있었습니다만,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장티푸스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International Journal of Infectious Diseases (2006) 10: 206-214)

페리클레스(Pelikles, BC 495 – BC 429)도 이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후 기록된 역병으로는 안토니우스 역병 (Antonine plague, AD 165 – AD 180) 을 들 수 있습니다. 안토니우스 역병은 근동 지역을 원정하고 돌아온 로마 병사들에 의해 로마 제국으로 들어왔는데, 그 결과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 황제 (Marcus Aurelius Antoninus Augustus, AD 121 – AD 180)를 비롯해 5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안토니우스 역병은 갈레노스가 서술했기 때문에 갈레노스 역병 (Plague of Galen) 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갈레노스는 166년 로마를 여행하고 소아시아로 돌아온 뒤 질병의 증상에 대해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의 기록에서는 열, 설사, 인두염, 피부의 농포 등을 묘사하고 있는데, 현대에는 이 질병을 천연두로 보고 있습니다. AD 251~266년에 재유행하기도 했는데 (키프리아누스 역병 (Plague of Cyprian) , 가장 심각했을 때는 로마에서 하루 5000명이 죽어나가기도 했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 황제. 그의 죽음은 로마 제국의 비극으로…

그러나 이보다 더 심한 비극은 바로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었습니다.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은 541~542년까지 비잔틴 제국을 덮친 역병입니다. 이 역병은 에티오피아나 이집트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집트에서 곡물을 운반하는 배가 콘스탄티노플로 많이 오는 과정에서 병을 옮기는 쥐와 쥐벼룩이 퍼졌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대에는 이 질병을 선페스트로 보고 있습니다. (선페스트는 14세기 흑사병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유럽을 강타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묻을 시간도 장소도 없어서 그저 쌓아두었다고 하며, 비잔틴 역사가 프로코피우스 (Procopius Caesarensis, 500 – 565) 에 따르면 대유행기에 콘스탄티노플에서 하루 10,000명 가량이 죽어나갔다고 합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 그도 선페스트에 걸린 적이 있습니다만,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이 역병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Flavius Petrus Sabbatius Iustinianus, Justinian I, 483 – 565) 의 정복 사업에 큰 장애가 되었습니다. 당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반달족과 동고트 족을 때려잡고, 하기아 소피아 등의 건축물을 짓는데 상당한 돈을 쓰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역병이 몰아치자 비잔틴 제국의 재정 상태가 영 좋지 않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비잔틴 제국의 군사력도 약해져서 이탈리아 반도를 유지하는데 만족해야 했고,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죽은 뒤에는 그마저도 거의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이 역병은 아랍 세계가 비잔틴 제국의 판도를 상당 부분 잠식하는 데에도 일정 부분 기여했습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 즉위 시 (붉은 색) 및 사망 시 (붉은 색 + 노란 색) 의 비잔틴 제국 판도.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페스트의 악몽은 14세기에 부활했습니다. 중세의 종말을 불러온 흑사병 (The Black death) 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흑사병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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