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반전, 또다시 반전
그 사이 장성하게 된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는 아버지의 원한을 잘 알고 있었고, 하마터면 자신들의 생명까지도 위험하게 만들 뻔한 티에스테스를 똑같이 증오하고 있었습니다.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는 미케네의 힘이 미치는 곳 구석구석을 탐색하여 마침내 티에스테스를 찾아내고 맙니다. 이 때가 되면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는 수려한 청년들이 되어 있었고, 아이기스토스도 힘 세고 멋진 소년으로 자라 있었습니다. 티에스테스를 사로 잡은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는 그를 아트레우스의 면전으로 데려갑니다. 아트레우스는 티에스테스를 하옥시켰고, 아이기스토스가 가지고 있는 검으로 티에스테스를 죽이게 했습니다. 아이기스토스가 감옥에 가서 티에스테스를 죽이려 하자, 자신의 검을 알아보고 울부짖습니다.
“그 검은 내 검이 아니냐! 아이기스토스야, 너는 내 아들이었단 말이냐! 내가 내 딸 펠로피아를 겁탈하던 날, 잃어버린 검이 왜 네 손에 들려있는 것이냐..!”
혼란에 빠진 아이기스토스는 결국 티에스테스를 죽이지 못했고, 펠로피아에게 사실을 고했습니다. 펠로피아는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날, 그녀를 강간했던 사람이 사실은 자신의 아버지였다는 데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그에게 사건의 전말을 알려주고 그 검으로 자신을 찔러 자살하게 됩니다. 자신의 생부가 누군지 알게 된 아이기스토스는 티에스테스를 안심시키고 아트레우스에게 티에스테스를 죽였다고 거짓으로 보고를 올리게 됩니다. 아트레우스는 신들에게 감사 기도를 올렸는데, 이 때 아이기스토스가 갑자기 달려들어 아트레우스를 살해합니다. 아트레우스는 이렇게 하여 허망하게 사망하고 맙니다. 이리하여 가문의 제 4대 당주이자, 아트레우스 왕조의 제 2대 국왕으로 티에스테스가 즉위하게 됩니다.
멜네라오스의 아내, 헬레네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전범 제1호(?) 일까요?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는 왕위 찬탈 소식을 듣자마자 도망쳐 방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스파르타의 왕 틴다레오스에게 의탁하고 있을 때, 여기서 형제는 저 유명한 헬레네와 구혼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과의 경쟁 끝에 메넬라오스가 당당하게 헬레네의 옆자리를 꿰차게 됩니다. 헬레네를 노리고 몰려들었던 다른 영웅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불만을 품었지만, 눈치 빠른 오디세우스의 설득으로 후에 헬레네가 불행하게 되는 일이 있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도우러 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해산하게 됩니다. 오디세우스로서는 이 약속으로 인해 자신이 20년동안 고난을 당해야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것입니다. 아가멤논은 특이하게도 헬레네가 아니라 그 언니였던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반했습니다. 그러나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이미 마음 깊이 사모하는 정혼자가 있었고, 질투에 눈이 먼 아가멤논은 그 정혼자를 살해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정혼자의 이름 역시 탄탈로스였습니다. 여하간, 정혼자를 살해한 아가멤논은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손에 넣는 데 성공합니다.
예정된대로 혼례는 치뤄졌고, 틴다레오스의 사위가 된 메넬라오스의 도움으로 스파르타에서 힘을 기르고 다른 도시국가들의 지원을 얻어내는 데 성공한 아가멤논은 연합군을 이끌고 미케네로 진격합니다. 티에스테스가 다스리던 미케네는 아직 아트레우스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이들이 아가멤논에 호응하여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티에스테스와 아이기스토스는 왕위를 버리고 도주하게 됩니다. 도망길에 이미 늙어서 기운이 쇠한 티에스테스가 마침내 여로의 피로를 이겨내지 못하고 허무하게 사망합니다. 아이기스토스는 반드시 자신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것임을 맹세합니다. 이로써 아가멤논이 아트레우스 왕조의 제 3대 국왕으로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아트레우스까지는 불분명하지만, 아가멤논은 어쨌든 트로이 전쟁기의 실존 인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이는 신화가 어느 정도 역사에도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입증합니다(히타이트의 문헌에도 ‘야하이와(아카이아)의 왕’으로 히타이트 왕과 동급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다만 실존 인물로서의 그는 신화상의 모습처럼 제왕의 풍모를 지녔는지는 불분명합니다.
3장. 아카이아 인의 왕, 아가멤논
통칭 ‘아가멤논의 마스크’. 그러나 이 마스크는 트로이 전쟁 2~3세기 이전의 것입니다.
아가멤논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클리타임네스트라를 미케네로 불렀습니다. 그들의 결혼 생활은 썩 나쁘지는 않은 편이었던 모양이지만, 앞서 서술했듯 클리타임네스트라는 그 때까지만 해도 아가멤논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가멤논이 그녀를 지극정성으로 대하자 정혼자를 살해한 일을 용서하겠다는 생각을 먹게 됩니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과의 사이에서 이피게네이아, 엘렉트라, 크리소테미스, 오레스테스를 낳았습니다. 메넬라오스는 헬레네와의 사이에서 외동딸 헤르미오네를 낳았습니다. 메넬라오스도 아들들이 모두 일찍 죽어 왕자가 없던 틴다레오스를 계승하여(틴다레오스가 너무 늙어 국정을 돌볼 힘이 없어 양위합니다) 형제가 나란히 스파르타와 미케네의 왕위를 꿰차게 됩니다. 형제간 반목이 극심했던 선대의 교훈을 거울삼아, 두 형제는 힘을 합쳐 아카이아의 패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합니다. 아가멤논은 왕으로서의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고, 메넬라오스는 그 자신이 뛰어난 장군으로 아가멤논의 패권에 일조합니다.
오레스테스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메넬라오스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깁니다. 바로 헬레네와 파리스가 밀통을 저지르다가, 파리스와 헬레네가 스파르타를 탈출하여 트로이로 도주해버린 것입니다. 메넬라오스는 곧바로 형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는 아카이아인의 왕-으로 행세하고 있던-인 자신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아카이아의 도시들에게 트로이에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킬 것을 강요합니다. 사실 그는 몇십 년 전 미노스 왕이 그랬던 것처럼 에게 해의 반대편에 자신의 패권을 확립시키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 디오메데스, 아이아스와 현자 네스토르 등 그리스 등지에서 쟁쟁한 영웅들이 원정에 참가하게 됩니다. 그들은 대선단을 꾸려 트로이로 원정을 떠날 채비를 갖춥니다.
그러나 출항하기 직전, 아가멤논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냥을 하러 갔고, 흰 사슴을 쏘아 화살로 맞춥니다. 그 사슴은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헌납된 것으로, 이에 노한 여신은 바람을 거두어 함대의 출항을 막습니다. 아가멤논은 제를 올려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사죄할 수밖에 없었고, 아르테미스 여신은 아가멤논의 딸을 제물로 요구합니다. 아가멤논은 이피게네이아에게 거짓말을 해서 불러내, 그녀를 제물로 바칩니다. 아르테미스는 이피게네이아를 측은하게 생각하여 타우리스(크림 반도)에 있는 자신의 신전에서 여사제로 일하게 합니다. 나중에 자신 몰래 딸을 제물로 바쳤던 일을 알게 된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정혼자의 일과 이피게네이아의 일로 아가멤논을 완전히 증오하게 됩니다. 이같은 사정을 알게 된 아이기스토스는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유혹하여 마침내 아이기스토스는 미케네 왕궁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게 됩니다. 아가멤논이 모르는 사이, 그녀는 아이기스토스를 사실상의 섭정으로 삼습니다. 두 사람은 10년동안 미케네를 함께 다스립니다.
트로이 함락. 그리스 영웅 신화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사건입니다.
한편 아가멤논은 트로이에 상륙한 이후 10년 동안 치열한 전쟁과 휴전을 반복했습니다. [일리아스]에서 아가멤논은 졸장부에 탐욕스러운 인간으로 그려집니다. 사실, 그의 성격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킬레우스와의 자존심 다툼으로 전열을 붕괴시킬 뻔했고, 아카이아 연합군의 사령관으로서 자신에게 가장 많은 몫이 할당되지 않으면 언제나 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가 아카이아의 패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당연한 행동이긴 합니다만, 어쨌거나 그의 이런 행동은 아카이아 군의 통합을 저해하는 데 크게 작용했음을 부정할 수 없겠습니다.
길고 긴 공성전 끝에 마침내 트로이가 함락됩니다. 아가멤논은 트로이의 아름다운 공주, 카산드라를 자신의 노예로 삼아 미케네로 당당히 개선합니다. 개선하는 왕의 모습을 본 민중들은 열광했지만,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이기스토스와 지내 온 세월에 대한 불안감, 아가멤논에 대한 증오와 함께 자신보다 젊은 카산드라를 향한 질투가 뒤섞여 묘한 감정에 휩싸입니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의 귀환을 축하했지만, 뒤에서는 며칠동안 아이기스토스와 함께 아가멤논을 살해할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카산드라는 아가멤논의 뒤에 엄습해오는 재앙의 그림자를 예언했지만, 아가멤논은 헛소리라며 듣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직접 행동을 개시합니다. 그녀는 도끼를 들고 카산드라와 함께 목욕을 하고 있던 아가멤논의 뒤를 가격합니다. 그는 즉사했고, 이어 카산드라마저 일격에 살해합니다.
아가멤논을 죽이고 기세등등한 클리타임네스트라.
그녀는 아가멤논과 카산드라의 피가 흐르는 도끼를 들어,
“너희들의 왕을 이렇게 만든 것은 나다! 지금 이 시간부터 누구든지 나에게 대항하는 자는 내가 직접 이렇게 만들어주겠다!”
그 기세등등한 모습에 질린 미케네 시민들은 그대로 해산하고,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가 공동으로 왕위에 오릅니다. 이리하여 아이기스토스가 아트레우스 왕조 미케네의 제 4대 국왕이 되었습니다.
한편, 메넬라오스는 헬레네를 되찾아 스파르타로 돌아갔습니다. 헬레네를 되찾은 메넬라오스는 여생을 행복하게 보냅니다. 메넬라오스의 딸, 헤르미오네는 이미 아름다운 처녀가 되어 있었습니다. 헤르미오네는 원래 오레스테스와 결혼하게 될 예정이었지만, 이 시점에서는 어린 오레스테스 대신 트로이를 함락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운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와 결혼하게 됩니다. 그러나 네오프톨레모스는 후에 헤르미오네를 노린 오레스테스의 계략에 빠져 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