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비극의 종말
상복을 입은 엘렉트라. 그녀의 이름은 엘렉트라 컴플렉스의 어원입니다.
아이기스토스와 클리타임네스트라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 아가멤논의 후사를 제거하려 들었습니다. 우선 아가멤논과 카산드라의 아들이었던 펠롭스와 텔레다모스가 아이기스토스의 명령으로 살해당합니다. 두 사람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오레스테스마저 제거하려 했습니다. 이 상황을 면하게 해준 것이 바로 그의 둘째 누나, 엘렉트라였습니다. 엘렉트라는 아버지를 살해한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를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그다지 없었습니다. 결국 엘렉트라는 오레스테스가 장성하여 아버지의 권리를 되찾아줄 것이라고 기대하며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가 아버지를 죽인 원수라고 일러주고, 도시 밖으로 탈출시켰습니다. 그녀가 오레스테스를 의탁시킨 곳은 고모부가 다스리고 있던 포키스였습니다. 메넬라오스가 다스리던 스파르타는 미케네에 대항하기에는 너무 약했고, 미케네에도 가까웠기 때문에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질수록 안전했던 것입니다.
오레스테스는 그 곳에서 자신의 조력자가 될 고종 사촌 필라데스를 만났습니다. 포키스의 왕인 스트로피오스는 오레스테스를 정성껏 길러주었습니다. 오레스테스는 엘렉트라가 일러준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를 죽여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마침 포키스에서 가까운 델포이의 신전에 자신의 운명을 묻게 됩니다. 그 신탁은 이러했습니다.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 네 운명이다.”
오레스테스는 자신의 운명 때문에 심각하게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낙심하지 않도록 옆에서 필라데스가 그를 지탱해주었습니다. 마침내 마음을 다잡은 오레스테스와 필라데스는 함께 아이기스토스와 클리타임네스트라가 공포 정치를 펼치고 있던 미케네로 귀환을 시도합니다.
오레스테스는 고국에서 너무 오래 떠나 있었기 때문에 그의 얼굴을 기억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이용, 오레스테스가 포키스에서 병으로 앓아누워 죽었다는 말을 퍼뜨립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의 유골을 가져온 사자로 분장하여 마침내 미케네 왕궁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거기서 오레스테스와 필라데스는 다시 한 번 찾아와서 유골을 전해주겠노라고 하고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의 얼굴을 확인합니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두 명의 앞에서는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슬퍼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은 알현실을 빠져나와 몰래 아가멤논의 무덤에 예를 표하고 있었는데, 마침 제를 올리러 왔던 엘렉트라가 수상한 남자 둘이 제를 올리는 것을 보고 단번에 오레스테스임을 알아챕니다.
오레스테스와 필라데스는 다시 한 번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에게 알현을 신청합니다. 아무 의심없이 알현을 허락한 그들은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오레스테스는 유골 같은 것은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으며, 자신이 바로 오레스테스이며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왔노고 밝혔습니다. 경악하는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는 손을 쓰지 못했고, 그는 먼저 아이기스토스를 살해했습니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자신의 가슴을 보여주며 “이 가슴으로 널 먹여 키웠다. 나는 네 어머니다.”라고 하며 살려줄 것을 애원했지만, 오레스테스는 그녀마저 찔러 죽였습니다. 그리고, 원수를 죽인 것에 대해 신들에게 감사의 제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가 존속 살해의 죄를 묻고 그를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모친 살해를 가장 큰 죄로 여겼는데 그 모권의 상징으로서 에리니에스 여신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죽이자 분노의 여신 에리니에스가 오레스테스를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에리니에스의 괴롭힘으로 인해 정신이 이상해진 오레스테스는 결국 죄책감으로 인해 필라데스의 응원에도 속수무책으로 스스로 무너질 위기에 놓여있었고, 결국 미케네 시민들에게 재판을 열어 자신의 죄를 물을 것을 청원하게 됩니다. 이 때 메넬라오스는 형수의 분부와 헬레네의 권유에 따라 오레스테스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케네에 와있었습니다. 미케네 시민들은 메넬라오스를 재판장으로 삼아 오레스테스에게 사형을 구형하지만, 오레스테스가 그의 딸인 헤르미오네를 인질로 잡으며 형량을 낮춰줄 것을 부탁하자, 메넬라오스는 그에게 1년 추방형을 선고합니다. 아트레우스 왕조의 다섯번째 옥좌는 아이기스토스와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아들이었던 알레테스에게 돌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리니에스는 오레스테스에게서 떠나지 않았고, 오레스테스는 마침내 아테네 여신에게 재판을 부탁합니다. 아테네의 아레이오파고스에서 벌어진 이 재판에서 오레스테스의 유죄가 6표, 무죄가 6표 나왔는데 여기에서 아테네가 무죄에 표를 던짐으로써 오레스테스는 구원받게 됩니다.
1년 동안 미케네에 돌아갈 수 없었던 오레스테스와 필라데스는 신탁에 따라 타우리스의 아르테미스 신상을 가지러 가는데, 타우리스에는 이방인을 아르테미스의 제물로 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타우리스인들은 오레스테스가 배에서 내리자마자 그를 납치하고, 아르테미스 신전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러나, 아르테미스의 여신관은 그를 아는 듯한 눈치였습니다. 그 여신관은 바로 지난날 아가멤논에 의해 제물로 바쳐쳤던 큰 누나 이피게네이아였던 것입니다. 결국 오레스테스와 필라데스는 이피게네이아의 도움으로 무사히 그 곳을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5장. “헤라클레스의 자손들”
당시 미케네에는 오레스테스가 타우리스로 갔다가 타우리스인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이야기가 퍼져있었습니다. 이에 알레테스 왕은 방심하고 있었는데, 필라데스와 함께 미케네로 성공적으로 잠입한 오레스테스는 알레테스를 살해하고 자신의 왕위를 되찾습니다. 그가 존속살해의 죄를 씻고 원래 그의 몫이었던 왕위를 되찾음으로써 아트레우스 왕가의 비극은 끝을 맺게 됩니다. 이후 엘렉트라와 필라데스는 서로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되고, 포키스의 왕위를 계승하게 됩니다. 혹자는 이피게네이아도 오레스테스와 함께 미케네로 돌아가 그 곳에서 계속 아르테미스 여신을 섬기는 조건으로 여신의 허락을 얻어 타우리스를 함께 탈출했다고도 합니다.
아트레우스 왕조의 제 6대 국왕이 된 오레스테스의 통치는 썩 훌륭했던 것 같습니다. 오레스테스는 아르고스를 수하에 두고 아르카디아 지방까지 미케네의 영토로 두어, 지난날 아가멤논 시대의 영광을 조금이나마 회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이전 영웅 시대의 영웅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주게 되는데, 바로 원래 자신의 약혼녀였던 헤르미오네를 되찾기 위해 네오프톨레모스를 살해한 일입니다. 마침 헤르미오네와 네오프톨레모스의 사이는 극도로 좋지 않았는데, 네오프톨레모스가 헤르미오네에서는 자식을 보지 못하고 헥토르의 아내이자 트로이 전쟁 이후에 그의 노예였던 안드로마케에게만 자식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헤르미오네는 오레스테스와 짜고 네오프톨레모스가 델포이 신전을 약탈하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립니다(오레스테스는 선동술의 대가였던 모양입니다). 결국 분노한 델포이 민중들에 의해 네오프톨레모스가 살해당하고, 헤르미오네와 오레스테스가 결혼하게 됩니다. 헤르미오네와의 결혼으로 메넬라오스 사후 오레스테스는 스파르타의 왕위까지 겸하게 됩니다.
헤라클레스의 장례. “헤라클레스의 후예”는 그를 핍박했던 미케네에 복수한다고 주장합니다.
오레스테스와 헤르미오네 사이에는 티사메노스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오레스테스는 사냥을 나갔다가 뱀에게 물려 사망하게 됩니다. 이후 왕위는 순조롭게 티사메노스에게 계승됩니다. 티사메노스는 아버지의 위업을 이어받아 미케네, 아르고스, 스파르타의 왕을 겸했습니다. 그는 선조들과는 달리 범용한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만, 그럭저럭 국가를 꾸려가는 데 무리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의 치세에 그리스 세계를 뒤바꿀 재앙이 발생했습니다. 바로, 북쪽에서 자신을 “헤라클레스의 후예들(Herakleidai)”라고 칭하는 무리들이 아카이아의 도시국가들을 습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헤라클레스의 후예들”은 미케네에 큰 원한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바로 지난날의 미케네 왕 에우리스테우스가 헤라클레스를 핍박할 때, 에우리스테우스가 헤라클레스의 자식들을 죽이려들고, 결국 북쪽으로 쫓겨난 헤라클레스의 자식들이 그 자신이라는 것이 이들이 주장이었습니다.
“헤라클레스의 후예들”은 아리스토데모스, 크레스폰테스, 테메노스의 3형제가 이끌었습니다. 이들은 무서운 기세로 남하하여 마침내 미케네 군을 대패시켰습니다. 미케네가 대패하는 것을 본 아카이아 도시들은 충격을 받고 미케네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미케네는 난공불락의 요새도시였기 때문에 쉽게 함락되지는 않았습니다. 티사메노스는 미케네 성에 틀어박혀 성공적으로 항전을 이끌었습니다. 공성전은 4번이 실패하고 사기가 덜어진 “헤라클레스의 후예”군은 마지막 시도로 5번째이자 가장 강력한 공성전을 전개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힘이 다 떨어진 미케네의 성문이 먼저 뚫리면서 미케네가 낙성되고 말았습니다. 티사메노스는 이들 “헤라클레스의 후예”군이 만만치 않음을 역설했고 이오니아와 아카이아의 군대를 합쳐 미케네를 탈환하기 위한 전투에 나섭니다. 그러나, 여기서 “헤라클레스의 후예”들을 이끄는 테메노스에게 대패하여 결국 이 전투에서 전사하고 맙니다. 이리하여 7명의 왕을 배출한 미케네 아트레우스 왕가는 종말을 고하고 맙니다.
도리아 인의 남하와 정착을 그린 지도. 도리아인의 초기 근거지는 아르고스입니다.
종장. 영웅 시대의 종말
“헤라클레스의 후예들”은 이후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정착했습니다. 그들은 미케네를 파괴하고, 장남이었던 테메노스가 아르고스의 왕이 되어 도리아인을 이끌었으며, 차남이었던 아리스토데모스는 미케네 정복전에 참가하기 위해 함대를 이끌던 중 벼락을 맞고 배가 불에 타서 죽습니다. 아리스토데모스의 몫인 라케다이몬(스파르타)은 그 쌍둥이 아들인 에우리스테네스가 아기스 왕가를, 프로클레스가 에우리폰테스 왕가를 개창하여 스파르타의 공동왕으로 즉위함으로써 기원전 212년 참주 나비스의 등장시까지 헤라클레이다이 왕가를 이어가게 됩니다. 막내인 크레스폰테스는 메세니아의 왕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테메노스의 아들들은 아르고스의 옥좌를 놓고 서로 다퉜습니다. 그들 중 카라노스는 왕위 다툼에 환멸을 느껴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그들이 원래 남하했던 북쪽으로 가 나라를 세웁니다. 이것이 후에 그리스를 최초로 통일하게 되는 마케도니아 왕국입니다.
“헤라클레스의 후예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도리스 인들을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이들의 침공은 기존의 미케네 문명을 파괴했다고 여겨지며, 그리스 영웅 시대의 끝자락을 장식하는 이 사건을 통해 신화의 무대는 아이네이아스의 로마 건국기로 옮겨가고 그리스는 암흑 시대로 접어듭니다.
Epilogue. 몇 가지 말
사실, 트로이 전쟁의 초반부와 트로이의 함락, 그리고 후일담은 [일리아스]에 씌여있지 않습니다. 트로이 전쟁을 향하여 떠나는 영웅들의 이야기는 각 비극 작가들의 이야기나 지역 전설로 내려오던 것을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한 것으로, 오늘날 우리가 ‘정설’로 받아들이는 내용은 가장 널리 읽히고 있는 토마스 불핀치 본의 것입니다. 불핀치는 그리스 신화를 정리하면서 빠진 내용은 희곡 작가들의 이야기를 끌어오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아가멤논의 사망 역시 미케네 지방에서 내려오던 전설을 비극 작가들이 통합하여 자신의 색채를 입혀 내놓은 작품들입니다. 여기서는 불핀치가 정리한 오레스테이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트레우스 왕가가 멸망할 때까지를 서술하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아트레우스 왕가를 중심으로, 그리스 신화에 대해 제 나름대로 엮어 본 이야기입니다(제가 엮었다는 것이지 제가 지은 것이 아닙니다! 모두 출전은 그리스 신화, 그리스 고전 문학입니다). 기본적으로 서사의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몇 몇 장면들은 대사를 집어넣기도 했는데, 의도했던 바가 잘 드러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위에 씌여진 이야기는 절대로, 거의 모두 허구입니다(모두 그리스 “신화”에 속하는 내용입니다). 트로이 전쟁 역시 우리가 생각했던 만큼 대단한 전쟁은 아니었고, 도리스인의 침입 역시 헤라클레스의 후손들의 침입으로 각색이 되어있으니까요. 다만, 아트레우스 가문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많은 이야기들의 모티브가 되고 있으며, 심지어 아트레우스 가문을 주제로 한 SF소설까지 있습니다. 모쪼록 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즐겨주셨다면 그것으로 저는 만족하며, 긴 글을 닫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