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열도의 주민 (8) 일본상: 화혼과 신도

일본열도의 주민 7편

1. 일본·일본인

2. 토착 주민

3. 류큐 열도의 주민

4. 재일 조선인·한국인

5. 일본상

   -화혼(和魂)과 신도(神道)

   -일본 민속학

   -일본 문화론

   -민예 운동

5. 일본상

과거 일본에서 어느 정도 형편이 좋은 가정이라면, 일상생활 중의 예의범절(躾)이나 관례(しきたり), 일생 의례나 세시풍속 등을 통해, 일본 고유의 생활 습관이 알게 모르게 몸에 배게 된다. 그러한 문화적인 장치나 표현의 기회가 위협을 받을 때, 비로소 정체성이란 것을 의식하게 된다. 생활문화 양식도 지역별·직업별로 특색이 있게 마련인데, 정체성을 의식할 때는 오히려 특이한 것이 존중받게 되는 경향이 있다. 

한편 메이지 이후에는 일본인 혹은 국민이라는 의식이 강조됨과 동시에, 예를 들면 단오절의 고이노보리(鯉のぼり) 같은 것이 일본 문화의 지표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일부 지방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것이 국민적인 주목을 받아 마치 일본 문화의 정수인 양 칭송받고, 그것이 다시 전국 방방곡곡에 확산되거나 해외에까지 소개되는 경우도 있다. 혹은 특수한 직업의 특유한 생활 습속이 마치 일본 문화를 대표하는 것처럼 소개되거나, 극단적인 경우에는 특정한 집에 전해져오는 것에 불과한 특별한 관례나 행사가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경우조차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개별적이고 특수한 사례를 피하고, 고이노보리와 같은 것만으로 일본 문화의 특질을 논한다는 것이 과연 적절할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즉, 문화의 대표성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가 문제인데, 원래 어느 사회에 대하여 특정 문화 요소를 거론하고 논의하는 것도, 무언가를 지표로 일반화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리가 뒤따른다.

미에(三重) 현 츠(津) 시에 전해오는 당인(唐人) 춤. 조선통신사와 결부시켜 전승되고 있다.

→화혼(和魂)과 신도(神道) 

자기 인식이라는 것은 타자 인식 없이는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열도 내부에서 다른 지역의 풍속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더욱 먼 지역이나 열도 주변부의 선주민 사회에 대한 관심에 이르기까지, 그 관심의 성격도 단순한 호기심에서부터 정복이나 지배를 수반하는 불온한 것까지 다양하다. 

한편 동아시아 범위 내에서는 특히 중화나 조선과의 대치를 포함한 자기 인식이 문제시되었다. 이러한 자기 인식의 문제는, 화한(和漢: 일본과 중국)의 이항 대립으로 이미 에도 시대 국학자들 사이에서 큰 과제가 되었고, 『만엽집』 이래로 대륙에서 전래되어온 불교나 유교와 대비되는 일본인 정신세계의 진수를, 신앙이나 일본풍의 문학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서양 열강과 긴장 관계가 고조되던 막부 말기에는, 진보적인 사무라이들 사이에서 화한 대신에 화양(和洋: 일본과 서양)의 대립을 축으로 하여 일본의 주체성을 모색하는 것이 새로운 과제로 부각되었다. 화혼양재(和魂洋才)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술과 정신의 영역을 구분함으로써 정신성에서 일본의 주체성과 우월성을 찾아내려 하였고, 그 결과 양이론이라는 극단적인 주장마저 생겨나기에 이르렀다. 메이지 이후에는 화혼과 양재가 별개로 전개되다가, 중앙집권 체제하에서 추진된 근대화의 주체로서의 국민 의식에 합체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역사적이고 국민적인 과제라고도 할 수 있는 양자의 관계에 대해서는 오히려 불문에 부쳐왔다고 생각한다.

국민적 과제 중에서도 국어(본 책의 저자가 일본 교수니 여기서 국어는 일본어를 뜻한다. 역주)로서 언어의 공통화가 주요 과제가 되었고, 근대적 학교 제도에서는 국민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하는 국민교육에 특히 역점을 두었다. 나아가 국민정신, 국민 건강, 국민 생활, 국민 가요 등등, ‘국민’ 혹은 ‘국’이라는 말을 머리에 둠으로써, 거의 모든 분야에서 국민화가 추진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화혼을 추구하는 국학이라는 사상 자체에 대해서도, 그 계보를 에도 시대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계통적으로 논의하게 된 것도, 메이지 이후의 일이었다. 

또한 원래 민속적인 것이었던 신앙에 대해서도 신도가(神道家)들에 의해 신들의 계보나 본원에 대한 해석이 시도되었는데, 메이지 이후에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와 일체화를 도모함으로써 국민정신의 핵심으로 제도화된 것이 소위 국가 신도(國家神道)인 것이다. 이와 같이 신도(신토)가 국가 규모로 재편된 것은 『연희식』 이래 처음이며, 이때는 그 전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민속적인 신앙 차원에서 신들은 어떤 장소나 물건과 결부되어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다가, 메이지 시대 이후 체계적이고 구심적인 권위 구조로 재편되었는데, 그 유효한 근거로 왕조의 정통성을 설명한 신화와 천황제가 한몫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토 아비토(2009), 『일본 사회 일본 문화: 동경대 특별 강좌』. 소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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