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대는 어디인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딘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우린 긴급히 통신을 작성하고 암호화한 다음 전투 함대에게 전송했지만, 거기에 대한 응답은 전혀 돌아오지 않았다…’
1916년 5월 31일 벌어진 유틀란트 전투는 1차 세계대전 도중 영국과 독일의 해군 주력이 서로 마주했던 거의 유일한 사례다. 그전까지의 해전은 소규모 교전이나 독일 유보트의 공세, 그리고 영국 해안에 대한 포격 정도에 불과했다. 진정한 의미의 전면전은 여태까진 벌어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결국은 영국과 독일 함대 모두가 손꼽아 기다려왔던 순간이 도래했다. HMS 말보로(Malborough)에 복무하고 있던 프레드릭 모리스(Frederick Morris)가 전투의 날, 함대 전체에 퍼져있던 분위기를 증언했다.
“전투가 있던 날, 그날 아침은 아무래도 뭔가 벌어질 것 같다는 느낌이 팽배했다. 최근 며칠간 함선 사이에선 약간의 무전 정도를 제외하면 그 어떤 유,무선 통신도 오가지 않았다. 그러나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무언가 곧 터질 것이라는 느낌이 함내 전체에 퍼져있었다. 그러다 오후가 되었고, 우린 정말로 뭔가 터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두가 전투에 돌입할 준비를 시작했다. 모든 것을 점검하고, 대비시켰다. 그때쯤 우리 모두가 그날 중에 포격이 있을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모두 전투배치 위치로 향했다.”
독일 대양함대 사령관 라인하르트 셰어 제독은 데이비드 비티 해군 중장이 이끌던 영국 순양전함 함대를 꾀어내 북해에서 해전을 벌인다는 계획을 수립한다. 그는 존 젤리코 제독의 영국 대함대 주력이 도착해 놈들에게 도움을 주기 전에 그 일부라도 격멸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전투에 임했다. 하지만 영국 장교 그라함 도날드가 설명하는 것처럼, 영국의 해군 정보국은 이미 왕립 해군에게 경고를 해준 상태였다.
“우린 뭔가 큰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해군성은 실제로 킬 방향에서 엄청난 양의 무선통신이 오고가는 것을 감지했다. 그들은 함선들의 움직임을 찾아낼 수 있었고 곧 대규모 독일 함대가 킬에서 움직이고 있으며, 명백히 바다로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국은 독일군의 규모와 정확한 목적지를 알아내야 했다. 제랄드 리보크(Gerald Livock)는 당시 왕립해군 항공부 소속으로써 수상기모함 HMS 엔가딘( Engadine)에서 복무하고 있었다.
“수상기모함 엔가딘은 그때 포스만에서 정박중이었다. 우린 함대가 출격할 때마다 함께 출항해 같이 움직이곤 했었다. 전투가 있던 날 오후, 수평선에서 연기 몇 개가 포착되자 우린 수상기 한대를 출격시켜 정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날씨는 운좋게도 수상기를 날릴 수 있을 만큼 좋았고 수상기는 곧 날아올라 순양함들, 독일 순양함 몇대를 발견해 보고했다. 그렇게 유틀란트 전투가 시작되었다.”
비티와 젤리코의 부대 모두가 스코틀랜드의 기지에서 출항해 바다로 나아갔다. 비록 그 전조는 충분했지만, 그럼에도 전투배치를 알리는 집합 나팔은 HMS 말라야에 승선 중이던 아서 가스킨 같은 몇몇을 놀라게 하기엔 충분했다.
“우린 항진하고 있었고 그날, 그 수요일은 소위 말하는 한가한(make and mend) 날이었다. 나와 친구, 스미디는 함께 함수갑판 포탑들 중 하나의 꼭대기에서 햇볕이나 쬐고 있었다. 그러다 3시 반쯤 느닷없이, 경보가 7번 울렸다. 나팔수가 조리병들은 조리실로 집합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건 그들이 즉시 모여서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더니 곧바로 긴급전투배치 신호가 울렸다! 난 벌떡 일어났고 우리 배에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던 라이온과 타이거를 볼 수 있었다. 난 라이온에게서 커다란, 그러니까 거대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걸 발견했고 로보에게 말했다. ‘저기 좀 봐, 라이온이 뭘 쏘고 있는 모양인데.’ 그리고 그것이 유틀란트 전투의 시작이었다!”
독일은 영국 함대 전체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비티의 순양전함들은 선두에서 정찰을 하다 전진하는 독일인들을 발견했다. HMS 갈라테아가 전투의 첫 포문을 열었다. 어뢰정비공 알프레드 레가트는 그녀의 승조원 중 하나였다.
“우린 비티와 깃발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며 그 우현쪽에서 앞서 항해하고 있었다. 그러다 멈춰 있는 상선 한척과 그녀에게 승선 중이던, 혹은 승선을 시도 중이던 독일 구축함 한척을 발견했다. 우린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다가갔고, 구축함에 더 가까워지자 이놈은 한 전단의 일부분에 불과하고, 그 전단은 한 전대의 일부에 불과하며, 그 전대는 독일 대양함대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두 함대가 덴마크 해안 유틀란트 인근의 북해상에서 마주쳤다. 비티의 순양전함들이 먼저 포문을 열었지만, 정확하지 않았다. C.파머는 2 순양전함 전대 소속HMS 인디파티거블의 신호수였다.
“비티 제독이 이끄는 순양전함 6척이 독일 함대에 돌진하기 시작한 건 대략 오후 3시 반 쯤이었다. 우린 14,000 야드 거리에서 포문을 열었지만 아직 너무 멀었다. 비티가 신호를 보냈다. ‘적에게 더 가까이 접근하라’ 우린 명령에 따라 독일 함대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던 중 신호기가 마스트 주위에 엉켜있어서 누군가 올라가풀어야 한다는 전갈이 들어왔다. 그래서 난 함상화를 벗고 망루에 올라탄 다음 꼭대기까지 줄사다리를 기어올랐다. 난 깃발을 풀어냈고, 무전 활대에 걸터앉아 주변 상황을 살펴봤다. 독일 함대가 눈에 훤히 들어왔다. 적어도 40척은 되어보였다. 그리고 거기 맞서는 우리 함선은 단 6척 뿐이었다.”
5 전함 전대 (the 5th battle squadron)는 오후 4시 즈음 전투에 돌입했다. 곧 영국과 독일 전함 모두 서로에 대한 명중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병기장교 (Gunnery officer) J 헤이즐우드는 그때 HMS 워스파이트에서 복무하고 있었다.
“난 B포탑에 배치되어 있었고, 그곳의 다른 모든 승조원들과 마찬가지로 준비되어 있었으며 적을 깨부숴버릴 기회만을 학수고대했다. 우린 전투를 열망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려왔던 바로 그날이었다! 포탑의 지휘관도 마침내 찾아온 기회에 우리만큼이나 흥분해 있었다. 아직까진 내려온 명령이라곤 ‘함포를 사격준비 상태로’ 뿐이었다. 이제 함포들은 준비를 마쳤고 첫 포탄을 날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펑! 첫 일제사격이 적을 향해 쇄도했고 우리의 전투도 시작됐다. 포탄과 코르다이트가 아래에서 올라오면 그것을 포에 집어넣었고 그러면 곧 발사되었다. 우린 최대한 신속하게, 리듬을 타며 움직였다. 포탑의 운용원들에게 이건 늘 있던 일상생활에 불과했다. 평소 계속해서 이뤄졌던 훈련은 실전에서 빛을 발했다.”
수적 열세에 처한 데다 심각한 손실을 입은 비티는 이제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영국 함대 주력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젤리코가 그들에게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독일군은 비티를 추격하다 대함대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이제 수적 열세에 몰린 건 셰어 제독이었다. 전투가 격화되면서 해롤드 라이트(Harold Wright)는 그의 함선, HMS 조지 5세에서 전투의 광경을 목도할 기회를 가졌다.
“그러다 마침내, 우리 함선이 잠시 동안은 적극적으로 전투에 기여하지 못할 것 같으므로 부서별로 몇 명의 인원은 갑판 위로 올라와 전투를 구경할 수 있다는 또다른 전갈이 도착했다. 난 바로 단정갑판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저무는 해를 등지고 선 독일 함대를 볼 수 있었다. 우리 포탄이 놈들을 맞추는 것도, 놈들의 포가 불을 내뿜는 것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무시무시한 규모로 쏟아지는 포탄의 폭풍과 전투의 위험요소가 사방에 가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양측의 모두가 그 시간 내내 하나도 두려운 것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독일 장교 에드가 뤼팅(Edgar Luchting)은 14 구축 전단에서 복무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린 그때 모두가 전투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함포 포탑들이 쏴대는 육중한 일제사격이 근처로 쏟아질 때면 배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마냥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다만 난 그들이 그때 정말 일제히 포격을 했다기보단 한번에 한 포탑이 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뭐 확신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다만 그들의 함선이 정말 일제사격을 했다면 배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하게 흔들렸을 것이다. 그것만은 확신할 수 있다.”
HMS 세인트 빈센트에 타고 있던 조지 시몬스는 근처의 다른 거대한 전함이 침몰하는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생생하게 증언한다.
“사실 그건 들리지 않는다… 만약 함선 한척이 침몰할 경우 네가 ‘들을’ 수 있는건 너의 배가 바다에, 공해에 떠있는 젤리마냥 오르내리는 것 뿐이다. 물론 그때 많은 아군 함선이 가라앉았고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긴 했지만.(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하지만 그건 독일 배가 당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여전히 바다 속에서 떨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13,000톤에 달하는(세인트 빈센트처럼), 강철로 된 배가 통째로 바다 속으로 사라진다. 그러니까 내 말의 뜻은, 서로 근거리에서 원을 그리며 대형을 짜고 있는 경우 넌 그 배에서 오는 진동을 그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