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사(2)

로마제국사 1편

세상은 점차 변했고 촌동네 로마도 커졌다.

백성들도 잘 살게 되면서 요구사항도 많아진다.

그리고 로마 왕정은 그걸 수용하지 못했고, 전쟁에서 왕의 군대는 자주 패배했다.

그 때 원로원의 입김이 세지고, 왕가를 방출시키게 된다.

원로원의 회의

원로원은 왕정시대에는 힘이 없었으나 공화시대에는 사회의 중추가 된다. 유력 가문에서 주로 원로원 의원이 나왔으나 나라에 공을 세운 이들도 원로원에 들어갔다.

정무관들이 민회에 발표하는 법안에 충고하기도 하고, 원로원 결의를 발표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무관들은 권력독점 때문에 두 명씩 있었다.

최고는 집정관이며, 그 외에 재무관, 법무관, 감찰관 등이 있었다.

호민관과 조영관은 사실상 독립직이었다.

조영관은 문체부 장관 비슷한 직책이었다.

호민관은 백성의 이익을 대변했고, 공무 중인 이를 건들면 처형이 기다렸다.(높은 분들이나 건달들이 시비걸지)

아부지를 아부지라 못하는 세상

원래 높은 관직은 귀족들만 해먹었다. 그러나 후대로 가면서 양민들이 저항했고, 전쟁에서 공도 세우고 호민관도 나오고, 개정법으로 양민과 귀족의 차별이 없어져 고위직에 가게 된다.

국가비상사태 때는 종신직을 할 수 있는 독재관도 있다. 훗날 카이사르 옹이 이걸 악용해 평생 해먹으려다 당한 것이다.

백성들이 성산 철수사건도 일으키고 크게 당한 원로원 할배들은, “통 크게” 베풀자고 약속한다.

그래서 입법위원회도 생기고 12표법이 생긴다.

트리부스에 따라 참가하는(소속구 따른?) 민회가 생겨났다. 농촌 민회가 더 많아서 땅부자들이 유리했다마는. 로마는 이탈리아 땅 전역을 손에 넣기 위해 병사들 대다수를 이루는 일반 백성들의 지지가 필요했고, 귀족과 양민의 통혼도 풀었다.

이탈리아 통일

켈트인과도 싸우고, 에트루리아도 밀고 그리스인 개척도시도 밀면서 로마는 점점 커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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